원신 - 연금술의 경계에서 서 있는 자, 알베도와 창조의 책임

 

탄생부터 의문이었던 존재, 알베도의 본질을 향한 탐구

《원신》 세계관에서 알베도는 단순한 수석 연금술사를 넘어,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끊임없이 고찰하는 철학자이자 실험자다. 드래곤 스파인 설산에 위치한 그의 실험실은 창조와 진리, 그리고 파멸의 경계에 선 인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라인도티르가 연금술로 창조한 인조 인간인 알베도는 인간과 유사하되 결코 인간이 아닌 경계인의 자리에 있다. 그는 여행자를 관찰하며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고, 나아가 ‘자신이 폭주해 몬드를 위협하게 된다면’이라는 상정 속에서, 통제 불능의 미래를 스스로 경계하는 내면의 딜레마를 안고 살아간다. 그의 서사는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창조된 존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관통한다.

 

 

알베도와 몬드: 수면 아래의 리더십

알베도는 공식적으로는 페보니우스 기사단의 수석 연금술사로, 기사단 내부의 학술 연구와 연금술 실험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그 이상이다. 진 단장이 부재한 틈을 타 츄츄족이 몬드를 공격했을 당시, 알베도는 처음 전장에 나서면서도 침착하게 기사단을 지휘하여 도시를 수호했다는 언급은 그의 실질적인 리더십을 보여주는 단서다. 겉으로는 은둔한 학자처럼 보이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결정적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알베도는 몬드의 또 다른 버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학문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그의 철학을 반영하며, 시민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지켜지고 있는 ‘숨은 방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정체성에 대한 위기와 재판: 창조자의 그림자를 마주하다

알베도의 정체성이 처음으로 크게 흔들린 사건은 바로 ‘배리의 순간’ 에피소드에서 벌어진 살인 및 시체 훼손 혐의다. 몬드 성 내에서 벌어진 이 재판은 단순한 사건 수사가 아니라, 알베도라는 존재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을 드러낸 구조적 장치였다. 알베도는 자신과 동일한 외모를 가진 이가 범죄를 저질렀음을 주장하고, 결과적으로 재판이 몬드 내부의 위장 인물과 가짜 집단을 끌어내기 위한 덫임이 드러난다. 이 과정은 알베도가 단지 창조된 존재임을 넘어서 ‘자기 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 즉 통제되지 않은 창조의 위험성을 다시금 상기시키며, 그 스스로도 그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판을 통해 무죄를 입증받은 알베도는 동시에 또 다른 자신과 마주하며, 책임 있는 창조자로서의 입장을 더욱 확고히 한다.

 

 

꼬마 두린과 인류화 실험: 창조를 통한 구원의 역설

알베도의 가장 깊은 실험은 두린의 심장을 제거하고, 순수한 의식을 지닌 ‘꼬마 두린’을 인간으로 탄생시키는 연금술 실험이다. 이는 단순한 생명 창조가 아닌, 두린이라는 존재가 가진 부패와 악을 정화하고 새로운 생명을 통해 재탄생시키는, 일종의 ‘속죄와 구속의 의식’에 가깝다. 알베도는 마녀회와의 삼자회담, 바르카 대단장의 인맥, 벤티의 협력을 동원해 실험을 추진하며, 시련을 통해 앨리스에게 인정받고 성공적인 인간화를 이끌어낸다. 알베도는 이 실험을 통해 자신이 창조된 이유를 되묻는 동시에, 창조자의 자격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검증하고자 한다. 이는 그저 과학적 성취가 아니라, ‘창조자의 책임’이라는 윤리적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기도 하다.

 

존재의 불안정성: 자각하는 피조물의 외로움

알베도는 스스로가 통제 불능의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이를 제어할 방안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는 여행자에게 “내가 폭주해 몬드를 파괴하게 된다면 넌 날 막아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닌, 피조물이 창조자에게 던지는 구조적 질문이며,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깊은 불안을 드러낸 고백이다. 동시에 티바트의 세계와 어우러질 수 없는 이세계의 씨앗을 싹틔우는 실험을 통해, 외부로부터 배척당하지 않는 생명을 창조하고자 하는 갈망도 엿보인다. 이 모든 행보는 그가 일반 연금술사가 아닌, 인간성과 윤리 사이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역사적 유사 인물: 빅터 프랑켄슈타인 – 창조의 윤리와 책임을 직면한 과학자

알베도의 이야기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유사하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창조의 열망으로 괴물을 만들어냈지만, 그 존재가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하면서 파멸로 치닫는다. 알베도 역시 인간을 닮았으나 인간이 아니며, 창조물과 창조자의 경계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되묻는다. 그러나 알베도는 프랑켄슈타인과 달리 자신의 폭주 가능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막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며 책임의식을 내면화한다. 알베도가 보여주는 철학적 고뇌와 실험의 진정성은, 그가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현대적 창조자의 윤리’를 대변하는 상징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