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면서도 왕이 아닌 존재, 벤티의 자유에 대한 철학
《원신》에서 벤티는 단순한 음유시인이 아니다. 그는 바람의 나라 몬드를 다스리는 바람의 신, 바르바토스로서, 티바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아르콘 중 하나다. 그러나 벤티는 왕좌에 앉지 않으며, 군림하는 자가 아닌, 자유로운 자로 남기를 택했다.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 민중 속에 숨어 그들과 같은 삶을 살며, 몬드의 ‘자유’라는 가치를 스스로의 철학으로 구현해낸다. 벤티의 서사는 권력을 포기한 신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자유는 단지 방임이 아닌, 스스로의 책임 아래 유지되는 고결한 질서임을 그의 선택을 통해 증명한다.
자유의 신이 택한 이름, 음유시인 벤티
벤티는 본래 이름이 아닌, 인간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선택한 정체다. 천년 전 몬드의 혁명을 함께했던 바람 정령은 벗을 잃은 후, 그를 기억하기 위해 벤티라는 인간의 형상을 빌려 스스로를 구현했다. 바르바토스는 몬드의 독재자 데카리아 왕을 무너뜨리고 자유를 되찾은 후에도, 왕이 되지 않았다. 대신 몬드를 시민 스스로가 다스리는 도시로 만들었고, 자신은 음유시인으로서 그 옆을 지켰다. 이는 몬드가 신정 정치가 아닌 자치 공동체로 작동하게 되는 토대가 되었으며, 신의 개입 없이도 질서가 유지되는 독특한 정치 구조의 핵심이었다. 벤티는 여기서부터 이미 자신이 다스리는 방식이 아닌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을 명확히 한 것이다.
과거의 상처와 잊히는 신의 비애
벤티는 자유를 부여했지만, 그 대가로 망각을 감수해야 했다. 야릴로에서 온 개척자가 몬드를 처음 방문했을 때, 시민들은 벤티가 누구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의 형상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를 낮춘 결과였다. 또한 천 년 전 혁명 당시 죽은 소년의 몸을 빌려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그의 존재 자체는 상실과 비애의 상징이다. 자신의 과거를 음악과 시로만 남기고,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는 단순한 장난기가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애도의 방식이다. 바르바토스가 직접 자신의 신상을 관리하지 않는 이유는 자유에 대한 강박이자, 신으로서 겪는 고독의 표현이기도 하다.
신성과 인간성의 경계, 개입의 최소화
다른 아르콘들과 달리 벤티는 정치적 개입이나 세속 권력 행사에 매우 소극적이다. 페보니우스 기사단의 구조와 운영에도 간섭하지 않고, 신조차 감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몬드의 자율을 보장한다. 이는 바위의 신 종려(모락스)나 번개의 신 라이덴 쇼군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신의 존재 방식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제공한다. 벤티는 ‘신의 권한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자신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자유를 보장한다는 판단을 내린다. 이는 몬드가 내·외부의 위기에도 시민과 기사단의 협력으로 자립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감추는 신의 이상주의
벤티는 ‘신’이라는 존재의 무게보다 ‘자유의 정령’이라는 본질에 더 충실하다. 그는 클레가 말썽을 피워도 개입하지 않고, 드발린이 폭주했을 때조차 직접적인 힘보다는 개척자와의 협력을 통해 사태를 해결한다.
이는 단지 책임 회피가 아닌, ‘자신이 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의 발현이다. 몬드 시민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가 완성된다는 철학은, 벤티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영된다. 그가 노래와 시를 통해 몬드의 기억을 불러오고, 시민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흥얼거리게 되는 방식은, 물리적 힘이 아닌 정신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의 신권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 유사 인물: 디오게네스 - 권위와 권력을 부정한 자유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고대 그리스 키니코스 학파의 철학자로, ‘자유로운 삶’과 ‘자연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며 사회의 권위와 관습을 신랄하게 비판한 인물이다. 그는 권력자와 제도에 구속되지 않으며, 스스로 통치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위치를 거부했다. 도시에 살면서도 통치자가 되지 않고, 사람들 속에 섞여 비판과 풍자를 통해 철학을 실천한 점은 벤티의 행보와 유사하다.
특히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소원이 있다면 말하라”고 했을 때,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라며 권위에 전혀 위축되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이는 벤티가 아르콘으로서 권위 대신 음유시인의 삶을 선택하고, 누구에게도 군림하지 않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디오게네스처럼 벤티도 물리적 권력이나 권위를 행사하지 않으며, 언어와 문화, 정신적 영향력을 통해 사회에 관여한다. 그는 신으로서의 존재를 숨기며 음악과 시로 몬드를 지키는 철학적 이상주의자이며,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에 대해 침묵 속에서 실천으로 답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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